길음동 사람들의 생계와 생업 - 목탄 장사와 시장의 성장
1. 길음동의 초기 생활과 연탄의 보급
1950년대 길음동 사람들은 주로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며 생활했습니다. 당시에는 산에서 직접 나무를 베거나, 나무 장사에게서 사서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산에 땔감이 줄어들면서 나무를 구하는 일이 어려워졌고, 나무와 숯을 파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송호석씨는 1959년부터 나무와 숯을 파는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철원에 있는 군부대에서 나무와 숯을 구입해 길음동으로 운반했습니다. 당시에는 철원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몇 대 없었고, 송호석씨는 아침 8시에 출발해 오후 2시경에 철원에 도착했습니다. 군부대에서 나무와 숯을 포차에 싣고 오후 5~6시가 되면 8톤짜리 트럭에 옮겨 싣고 길음동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는 이 나무와 숯을 다시 작은 트럭에 나누어 싣고 마을을 돌며 판매했으며, 팔다 남은 나무는 장작으로 쪼개어 미아시장에 한 단에 100원씩 팔았습니다. 장작을 패는 사람에게 한 단당 15만 원의 임금을 주면서 일했습니다.
길음동의 초기 생활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주민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물 지게와 물통을 이용해 공동 수도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고, 전기도 부족해 10W 혹은 20W 전구를 사용했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전기가 보편화되었지만,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도둑 전기를 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2. 나무와 숯 장사의 성장과 어려움
송호석씨는 나무와 숯을 구입해 판매하는 장사를 통해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철원에서 군부대가 나무를 베는 작업을 통해 나온 나무들을 구입해 길음동으로 운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철원의 군부대를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했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철원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대 없었고, 아침 8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오후 2시경에 도착했습니다. 군부대에서 나무와 숯을 싣는 작업은 오후 5~6시까지 계속되었고, 송호석씨는 이 나무와 숯을 8톤짜리 트럭에 옮겨 싣고 길음동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매우 힘들었으며, 밤중에 길음동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송호석씨는 실고 온 나무와 숯을 다시 2톤짜리 작은 트럭에 나누어 싣고 마을을 돌며 판매했으며, 몇 시간 안에 모든 나무와 숯이 팔리곤 했습니다.
팔다 남은 나무는 장작으로 쪼개어 미아시장에 한 단에 100원씩 팔았습니다. 장작을 패는 사람을 따로 두어 한 단당 15만 원의 임금을 주면서 일했습니다. 송호석씨는 스물 여덟 살 때 돈이 없어서 나무와 숯 장사를 시작했고, 전방에서 산을 벌목하는 군인들의 도움을 받아 나무를 구입해 판매했습니다. 그는 전방에서 나무를 싣고 오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3. 길음동의 시장 성장과 주민들의 삶
1960년대 길음동에 판자촌이 형성되면서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되었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길음시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서울의 5대 시장 중 하나로 성장했으며,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길음시장은 주민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길음시장의 활성화는 주민들의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상점과 가게들이 생겨났고, 주민들은 필요한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이로 인해 일자리도 늘어나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길음시장은 주민들에게 중요한 생활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4. 나무와 숯 장사의 지속과 변화
송호석씨는 나무와 숯 장사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며, 길음동 주민들에게 중요한 물자를 공급했습니다. 그는 철원에서 나무와 숯을 구입해 길음동으로 운반하고, 이를 다시 작은 트럭에 나누어 싣고 마을을 돌며 판매했습니다. 송호석씨는 이 과정을 통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송호석씨의 나무와 숯 장사는 길음동 주민들에게 중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철원에서 나무와 숯을 구입해 길음동으로 운반하고, 이를 다시 작은 트럭에 나누어 싣고 마을을 돌며 판매했습니다. 송호석씨는 이 과정을 통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길음동의 초기 생활은 매우 어려웠지만, 주민들은 서로 협력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송호석씨와 같은 나무와 숯 장사들은 주민들에게 중요한 물자를 공급하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길음동의 시장은 이러한 주민들의 노력과 협력으로 성장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