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 시장

성북구 길음동 시장의 아직 다 하지 못한 나머지 이야기

한국전쟁 이후 길음동의 인구 증가와 일자리 부족 한국전쟁 이후 길음동에는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인구가 증가했습니다. 특히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때만 하더라도 일자리라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루 벌어서 그날 그날의 생계를 꾸려나가기에도 벅찼습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피를 팔아서라도 생계를 이어야 했습니다. 피를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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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음동 시장 속 목수, 공사 그리고 잡부의 모습

들어가며 1960년대 한국에서는 자녀교육을 위해 농촌에서 서울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났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이들이 서울에 올라와서 별다른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막노동뿐이었습니다. 남편이 공사 현장에 하루 나가서 벌어온 돈으로 쌀 한 되와 연탄 한 개를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남편뿐만 아니라 부인도 가사도우미나 청소부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공구리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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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길음동 시장과 관련한 일들

성북구 길음동 시장과 관련한 일들 길음시장은 1950년대 이후 정통천을 따라 목다리 밑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면서 형성되었습니다. 길음동은 의정부, 동두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입구에 해당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의정부, 동두천 일대에서 물건을 싣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길음시장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으며, 그 당시 길음동 주민들은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길음 1동은 원래 집이 거의 없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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